Utah, US
지금은 남편이지만 2012년 당시에는 남자친구였던 크리스가 한국에 있다가 미국으로 돌아가 버렸을 때, 난생 처음 장거리 연애를 해 보았었다. 떠나기 전부터 계속 같이 가자고 설득하던 크리스는 미국에 가서도 계속 나를 오라고 설득하였다. 사실 스무 몇 살 먹으면서 비행기라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제주도 갈 때 한번 탄 게 다고, 외국이라곤 나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혼자 외국에 나가고 비행기를 탄다는 게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더구나 나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에 울렁증이 있는 안전제일주의자라 미국에 가겠다고 결정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역시 사랑의 힘은 대단한가 보다.
처음 챙겨보는 여행가방에 어설프게 꾸겨넣은 짐들 처럼 공항에 있는 나와 비행기에 앉아 있던 내가 그렇게 어색할 수 없었다. 직항티켓으로 미국까지 가기에는 학생인 나에겐 너무 비쌌으므로 일본을 경유하여 가기로 하였다. 비수기라 그런지 왕복 티켓을 세금 포함하여 1200불 정도에 샀던 것 같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약 두어시간 가량 짧은 비행을 마치니 도쿄 나리타 공항에 도착했다. 두시간 밖에 안되었지만 기내식이 나왔다. 재팬 에어라인은 이 이후에도 몇 번 이용했었는데 승무원분들이나 서비스 등에서 상당히 인상이 좋게 남아있다.
나리타 공항에서 잠깐 체류한 후 다시 재팬 에어라인을 타고 LA로 향했다. 거의 13시간의 비행이었을 것이다. 비행시간 동안 읽으려고 가져온 책은 이미 나리타 공항에서 완독해 버렸고, 상영중인 영화나 방송도 썩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이코노미 석은 숙면을 취하기엔 바람직하지 않았고, 지루하게 비행화면이나 보면서 시간을 때웠던 것 같다. 크리스에게서 비행기에서는 술을 무료로 마실수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사실 믿지 않았었다. 주변에 앉은 사람들이 맥주나 와인 등을 주문해서 마시는 걸 보고는 혹시나 요금이 부과되는 건 아닌가 하고 의심하다가 승무원분께 맥주 한 캔을 주문했더니 간단한 주전부리와 함께 제공해주셨다. 음료 주문메뉴에 위스키와 콜라가 있길래 혹시나 위스키콕도 가능할까 해서 부탁했더니 심지어 제조해서 가져다 주셨다. 우와 이건 신세계야, 술이 공짜라니! 마음 같아선 항공권 티켓값만큼 마시고 싶었지만 국제적 술주정뱅이가 되긴 싫어서 참았다.
사실 이 때 까지만 해도 외국에 간다는 떨림과 설렘 보다는 지루함이 앞섰다. 마치 시외버스 타는 느낌으로 혼자 멍하니 있다가 LA공항에 도착해서야 타국에 있다는게 실감이 났다. LA공항은 생각보다 훨씬 크고 사람도 많았으며, 그만큼 복잡했다. 부끄럽지만 수화물 찾는 것부터 입국심사까지 얼마나 헤맸는지 모른다. 크리스에게는 잘만 나오던 영어가 외국에 나오니 갑자기 불통이어서 더 답답했다. 물론 불친절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친절한 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유타행 게이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크리스가 유타 공항에 마중나오기로 했었지만 마침 비행기가 연착되고, 로밍을 안 한 탓에 연락할 방법도 없고 해서 되게 막막한 심정으로 LA에서 체류했던 것 같다. 이러다 국제미아 되는 건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유타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던 옆자리의 잘생긴 청년에겐 미안하지만 모르는 외국인 여행객과 스스럼 없이 말을 틀 정도의 사교성은 없는 나이기에 조용히 잠을 청했다. 장시간의 비행과 처음 접하는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로 인해 나는 설레기보다는 피곤함과 지루함에 지쳐있었다.
다행히 크리스는 무사히 공항에 마중나와 있었고, 나는 국제미아가 되지 않아도 되었다. 나중에 얘기했었지만 유타 공항에서 서로를 만났을 때 우리 둘 다 새삼스레 상대가 외국인임을 느꼈다고 했다. 하얗고 노란 머리의 사람들 가운데에 있는 똑같이 하얗고 커다란 크리스와 뭔가 이질적인 검은머리의 나...ㅋㅋㅋ
공항을 나와 크리스의 차를 타고 하염없이 달려 도착한 웬도버의 호텔에서 난생 처음으로 카지노를 접했는데, 원래 도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다 별로 소질이 없어서 별로 흥미가 없었다. 대신 크리스가 제일 좋아하는 룰렛을 하는 걸 구경하면서 팁만 주면 몇 번이고 무료로 마실 수 있는 칵테일이나 실컷 마셨다. 결국엔 돈을 잃고는 호텔 안에 있는 카페에서 치킨커틀렛을 먹었는데 너무너무 짰다. 이런 음식으로 장사를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게 짰는데 알고보니 미국이란 동네의 음식은 다 짜다.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으로 짜다.
즐겨 이용했던 Arby's의 어니언링. 이거랑 같이 햄이 듬뿍. 진짜 듬뿍. 빵 굵기보다 더 많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아침으로 먹었다. 내가 그렇게 싱겁게 먹는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오히려 우리집은 좀 짜게 먹는 편인데) 어디를 가도 음식이 다 짰던 걸 보면 여기는 다 짠가 보다.
그런데 이 염분이란 게 중독성이 있어서, 처음엔 먹는 음식마다 다 짜다짜다 했던 내가 나중에는 먼저 짠 음식 먹으러 가자고 할 정도였다. 미국에서 짠 음식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었다면 한국에 돌아와서는 닝닝한 감자튀김에 적응하느라 또 조금 시간이 걸렸었다.
Great Salt Lake
그레이트 솔트 호(Great Salt Lake)로 가는 길. 하늘이 정말 푸르고 높고 예뻤다. 간만에 하늘을 볼 여유가 생겨서 좋았다. 광활한 평지를 가로지르며 달리니 스트레스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레이트 솔트 호로 가는 길 중간에 그레이트 솔트레이크 사막(Great Salt Lake Desert)도 지나쳤는데, 꼼짝없이 모래인 줄 알았는데 소금이라고 한다. 거짓말하지 말라며 내려서 확인해보니 정말 소금이어서 신기했다.
미국이 넓다 넓다 말로만 듣고 사진으로만 봤지 실감은 안 났는데 막상 와보니 넓은 걸 알 것 같았다. 차로 장장 몇시간을 달려서 겨우 그레이트 솔트 호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한국 같았으면 부산에서 서울을 갈 시간이었을 텐데 여기선 그냥 주 안에서 이동하는 것 밖에 안 되었다. 오랜 시간 달려 도착한 그레이트 솔트 호는 그레이트 솔트레이크 사막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봐도 바다인데 호수라고 했다. 바다처럼 파도도 치고, 갈매기도 날아다니고 바람에도 해운대 바닷가처럼 짠 내가 나는데도 바다가 아니라 호수란다. 혹시나 해서 호수물을 살짝 혀에 대 봤더니 소태처럼 짰다. 호수든 바다든 간에 몇 시간 동안 사막만 보다가 간만에 물을 보니 느낌이 색달랐다.
2002년에 유타의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렸었는데 그 랜드마크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안톤 오노의 반칙에 온 국민이 분개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나 지났나 보다. 랜드마크도 그 세월을 반증하듯 벌건 녹이 짙게 슬어 있었다.
Salt Lake City
크리스네 집에서 기르는 개 날라. 래브라도 리트리버와 골든 리트리버가 믹스되었다고 한다. 역시 대형견이라 그런지 아직 어린데도 몸집이 제법 크고 힘도 좋다. 어찌나 에너지가 넘치는지 하루종일 온 집안과 잔디밭을 쉴 새 없이 뛰어다닌다. 영리하고 활발한데다 말도 잘 듣는 순둥이다. 장난감을 물어뜯으며 놀기 좋아하는데, 온 집안에 성한 장난감이 없었다. 다 뜯겨서 만신창이. 종종 장난감으로 같이 놀아주고 나면 어찌나 힘이 좋은지 팔이 욱씬거렸다. 어릴 적부터 집에 개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이렇게 집에 애완견 키우는 게 너무 부럽다.
최근에는 작은 미니핀 믹스견을 입양하여 심바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하셨다. 심바와 날라라니! 날라가 그리운 건 물론이고 심바도 보고 싶고 심바와 날라가 같이 노는 것도 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거린다.
환전해서 간 US달러. 실제로 달러를 손에 쥐어 본 건 처음이었다. 뭣도 모르는 외국인 눈에는 100달러나 10달러나 1달러나 다 그게 그거 처럼 보인다. 물론 그건 동전도 마찬가지.
달러는 괜찮은데 센트는 머리가 나쁜지 아무리해도 적응이 잘 안되서 계산할 때 항상 애를 먹었다. 외국에는 quarter라는 개념이 참 흔한데, 나한테는 이게 영 익숙하지가 않아서 거스름돈이나 잔돈 계산할 때 너무 어려웠다. 그 때마다 캐셔한테 양해를 구하고 크리스가 옆에서 센트 세는 걸 도와주곤 했는데 마치 네 살짜리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다. 하...ㅜㅜ
소프트 타코(Soft Taco)
하드 타코(Hard Taco)
우리가 집에 도착했을 때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 아무도 집에 없어서 기다리는 동안 잠깐 밖에 나가서 타코를 먹었다. 하드타코 보다는 소프트 타코가 더 내 취향이었다. 개인적으론 타코보다 부리또의 광팬이었지만, 미국에 있을 때 부리또와 함께 타코도 줄기차게 먹었다. 멕시코와 이웃나라라서 그런지 멕시코 음식점이 굉장히 많은데 단돈 몇 달러인데도 양도 푸짐하고 맛있고 완전 좋았다. 왜 이렇게 저렴하고 리치한 풍미의 음식들이 우리나라에만 들어오면 다 비싸지고 맛은 심플해지는 걸까? 정말 슬픈 일이다.
멕시코 요리에 빠지지 않는 저 초록색 소스(과카몰리인가?)는 참 매력적인 것 같다. 미국에서 먹는 타코나 부리또도 맛있는데 과연 현지에서 먹는 건 얼마나 맛있을 것인가? 맛있는 음식이란 항상 여행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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